칼빈주의 문제점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육신을 입으시고 죄의 희생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이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이며 선택받은 자들은 믿음을 통해서 모든 죄와 형벌이 그리스도에게로 전가되며, 모든 죄와 정죄에서 자유를 얻는다. 예수님의 순종과 고난을 통한 자비와 은총은 그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며, 그리스도의 의는 그들에게로 옮겨져 선택받은 자들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 이 때의 믿음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택하여 주신 자들만을 회개시키고 구원하시려고 오셨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인간은 자연 상태로서는 도저히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그래서 인간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은 전적 타락 또는 전적 무능력아래 있게 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고 구원을 받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과 구별되게 그들을 구원하셨던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음에 틀림없다. 이것이 선택이다.
택함 받은 자의 죄에 대해서는 충분하고 완전하고 만족할 만한 속죄가 요구된다. 그렇게 되어야만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고 “구주“가 되시는 것이다. 이 속죄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공의 아래 고난 당하시고 구세주로서 이미 정해 놓으신 구원을 성취시킨 십자가 상의 죽음에 자발적으로 복종하심으로써 완성되었다. 예수님은 형벌을 담당하셨고,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
그리스도는 누구의 형벌을 대신 지셨으며, 또 누구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는가하는 문제는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구원하기 위해서 이다.
"보편주의자들"은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으므로, 모든 인간은 구원받을 것이라는주장으로 논리적으로 맞지않는다. 만일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기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다고 하면 모든 인간은 구원받아야 하기때문이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어느 특정한 사람을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다.
"알미니안"들의 주장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위해 잠재적인 구원을 이루어 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긴 했어도 그가 이루신 일은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기로 결심하여" 그로 인해 구원받을 때까지는 효력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것은 어떤 일정한 수의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다.
이것이 바로 제한된 속죄로 그리스도는 특별히 선택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으셨다. 즉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엡1:4), -<개역 성경> ,아버지께서 "세상 중에서 그에게 주셨던 자들"(요17:16)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개역 성경> 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를 흘려주었다고 친히 말씀하셨던 자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다.
이 견해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이심이라"
이는 유대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한 민족으로 구원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는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엡5:25)-개역 성경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개역 성경
위 구절에서 우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누구를 뜻하는 것인가? 세상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세상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세상을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신 것이 되기 때문에 보편주의자들의 말이 옳게된다. 그럴 경우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야한다. -(고전15:22) -개역 성경
아담의 자손은 모두 아담 안에서 죽는다. 왜냐하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모두-그가 위하여 자신을 주셨던 교회- 그 안에서 살아나게 된다.
왜 이런가? 그것은 그리스도가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주셨기 때문이다.-(사53:11) -개역 성경
그래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실 때 “그를 상하게 하는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였기에 주께서 그를 고난에 두셨도다. 주께서 그의 혼을 속죄제물로 만드실 때 그가 자신의 씨를 보리니 그가 자신의 날들을 늘릴 것이요, 주의 기쁨이 그의 손에서 번창하리라.”(사53:10) -(개역 성경)라고 선자자를 통해 말씀하신다.
만일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시려 하지 않고 오직 택한 자들만 구원하시려 하였다고 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은 우리가 바로 믿는 것이 된다.-(요6:37) -개역 성경
이와 반대로 만일 온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면 그리스도의 속죄는 실패이다. 굉장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만일 한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면 그가 깨뜨린 율법은 구속자가 그를 위해 일하신 것으로 인한 것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는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적용이 되며 그들은 구원을 받기로 창세 전에 예정되어 있었다.
“의의 길을 알고 난 뒤에 그들에게 전수된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는 것보다는 알지 못했던 편이 더 나았으리라. 그러나 참된 잠언대로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니 “개는 그 자신이 토해 낸 것으로 다시 돌아가고 또 돼지는 씻고 나서 그녀의 진창 속에서 뒹군다.” 하였도다.“(벧후 2:21-22)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은 “돼지(이방인 여자)들과 개들(이방인 남자)”의 죄 값마저 지불하였다. 주님의 피를 밟는 죄인들도 주님의 피로 거룩하게 된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발 아래 짓밟고 또 자신을 거룩케 한 그 언약의 피를 거룩하지 아니한 것으로 간주하고, 또 그 은혜의 영을 모욕하는 자가 얼마나 더 심한 형벌을 받아야 마땅한지 생각하라.”(히 10:29)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와 허물로 죽은 채 태어나는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허물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그가 살리셨으니,”(엡 2:1)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이 말씀은 신실하며,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하도다. 죄인들 중에서 내가 우두머리라.”(딤전 1:15)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만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있다.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하심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6)
하나님이 계획하신 속죄는 온전하게 완성되었다.
“그 뜻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똑같은 제사를 자주 드리지만 이것으로써는 결코 죄들을 제거할 수 없으나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그후로는 그의 원수들을 자기 발판으로 삼으실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이는 그가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히 10:10-1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지식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의로우시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위해 속죄를 마련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제한 속죄를 하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님은 두 번째 사람으로 “인자”로 불리우셨다. 아담이 타락하여 온 인류가 죄 가운데 놓이게 된 것처럼, 예수님은 두 번째 아담이시기 때문에 온 인류를 위해 속죄를 이루셨다. 아담이 온 인류에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역시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예수님은 “인자”이셨지 선택된 사람의 아들이 아니셨다.
칼빈주의자들은 “속죄와 속죄의 적용”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양의 피를 뿌려야만(적용) 구원받을 수 있었다.
“같은 달 십사일까지 간수하였다가, 이스라엘 회중의 전체 모임에서 저녁 때에 그것을 잡을지니라.”(출 12:6)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셨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의 고난 때문에 천사들보다 조금 낮아지신 예수를 보니,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도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기 위함이더라.”(히 2:9)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개인적으로 적용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나타내셨느니라.”(롬 5:8)
“속죄와 속죄의 적용”이 동시에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태어나면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한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못하셨다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전 15:17)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들 가운데 있는 것이다. “속죄”가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살게 하려 함이라.”(고전 15:22)
어떠한 사람도 나는 아담 안에 있겠다고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겠다." 라고 선택할 수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때 예수님의 속죄를 적용받는 것이다.
“제한된 속죄”가 옮다면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어차피 선택받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않은 죄로 정죄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자기들을 위해 죽지 않으셨는데 왜 믿어야한단 말인가.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내어주셨으니 때가 이르면 증거되리라.”(딤전 2:6)
“우리는 모두 양같이 길을 잃어 각자 자기의 길로 돌이켰으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도다.”(사 53:6)
모두,모두,모두..... 예수님은 선택된 사람들 만을 위하여 피흘려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하였을 때 그리스도께서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느니라.”(롬 5:6)
위 구절의 경건치 않은 사람들은 선택된 자들인가? 모든 사람들이 다 경건하지 않다.
예수님의 피뿌림이 적용될 수 있는 사람은 경건하지 않은 선택된 사람들이어야 하는가? 예수님은 경건치 않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고난받으시고 피흘려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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