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미니안주의 5대 교리의 설명 : 자유의지 또는 인간의 능력
비록 인간의 본성이 타락(아담의 범법으로 인한)으로부터 신중히 영향을 받았을지라도 인간이 영적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 남아 있게 되지는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인들이 회개하여 믿게 하실 수는 있으나 그분이 인간의 자유를 간섭하지는 않는다. 각 죄인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그의 영원한 운명은 그가 자기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의 자유는 영적으로 악보다 선을 택할 수 있는 능력에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의 의지는 그의 죄를 짓는 본성에 노예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죄인은 하나님의 성령에 동조(협조)하여 재생될 수 있는 권능이 있고 또 하나님의 은사를 거절하여 멸망될 수 있는 권능도 소유하고 있다. 타락된 죄인은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나 그가 믿기 전에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신앙이란 인간이 행하는 것이며 다시 태어나기 이전에 신앙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신앙은 죄인이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며 그것은 곧 인간이 구원의 길에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다.
알미니안주의는 도르트 총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역사 속에서, 또 현재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신앙적 경건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한 채 알미니안적인 경건을 추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알미니안주의가 인간의 이성으로 생각했을 때 가장 최상의 도덕을 이룰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알미니안주의는 가장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복음과 가장 비슷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속을 것이며 알미니안적인 사상과 경건을 이룬 사람은 가히 복음의 원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알미니안주의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람의 지혜의 어리석음을 볼 수 있다면 현재의 우리에게 역사 속에 남겨진 알미니안주의는 우리를 향한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랑과 경륜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미니안주의의 큰 오류중 하나는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부정하는데 있다. 그들은 중생하지 못한 자연인일지라도 선한 것이 남아 있어 구원 뿐 아니라 점진적으로 더 큰 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믿음은 선물이 아니라 타락 후에도 남아있는 본성의 빛을 잘 활용하여 얻어지는 것이라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처럼 인간이 완전한 부패가 아닌 하나님을 찾을 만한 선한 것이 남아 있다면 ‘은혜’는 온전한 은혜가 되지못하고 인간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부분적 은혜가 되어 버리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의 희생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공로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선한 것을 가리고 있는 도덕적 타락, 탐욕 등을 제거해 간다면 점차적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은혜로든 행위로든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실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시기 위함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이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죽음은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한 대속적인 죽음도 아니고 또 대속적인 죽음과 구속을 믿는 이들을 의롭게 하시는 믿음의 능력도 아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지 하나님과 새로운 방법으로 새로운 조건들을 부과하는 언약을 맺을 수 있는 권리만을 얻어내었고 결국 구원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려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알미니안들은 은혜나 믿음이나 구원이나 그리스도의 죽음 등 같은 단어를 쓰고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복음과는 본질적으로 원수 되는 주장을 한다. ‘오직 은혜’라는 말은 행위나 노력의 결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아닌 거저 선물로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은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알미니안들은 은혜는 인간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인간의 의지를 통한 선택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가 조금이라도 섞인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직 은혜가 아닌 행위를 통해 자신의 공로를 쌓게 되는 결과를 맺게 되므로 자기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알미니안들은 복음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오해하고 있으며 특히 그리스도의 보혈의 의미를 이방 종교와 같이 해석한다. 그들은 성경적인 기준이 아닌 자신들의 이성적인 판단대로 하나님을 정의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주장이 복음적인 설득보다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잘 먹히는 것은 그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한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은 “믿고자하고 이 믿음 안에서 인내하며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며 그분의 선택의 전체적이며 완전한 작정이다.”
알미니안주의를 추종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하나님의 일에, 또 선행에 많은 열심과 노력을 기울이면서 스스로 자족하며 스스로 위로한다. ‘이런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작정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문설주와 인방에 어린양의 피를 묻힌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하심으로 말미암은 죄 사함과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은 영원한 생명의 씨앗이 심겨진 자들이며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룩의 능력이 나타나 죄를 이겨간다.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또 선택과 끝까지 견인하실 것을 믿는다. 이들은 알미니안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태해지거나 현재 신앙적 상태에 만족하여 안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끝없이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며 또 그것을 즐거워하며 생활 속에서 죄와 이웃사랑의 요구의 순종에 대한 싸움을 싸우게 된다.
그들은 실패할 지라도 좌절하지 않으며 죄성을 이길 때마다, 선으로 악을 갚는 요구에 순종할 때마다 주님의 형상을 점점 더 닮아가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거룩의 능력은 바리새인적인 알미니안들의 인간의 노력으로 이루는 거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이것을 구분하지 못할 때 맹인인 것이다.
알미니안들의 무지는 하나님의 ‘선택’ 문제에서도 다음과 같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아담의 타락한 상태 및 죄와 정죄의 상태에 내버려 두기로 작정하시거나 누군가를 지나치기로 작정하신다는 것은 결코 그분의 공의로운 뜻에서 기인될 수 없다.”
그들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하나님이라면 누군가를 특별히 선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즉, 누군가를 특별히 선택한다면 불의한 하나님이 되고 또 악의 조성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인간이 죄 가운데 머물러 있는 상태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상태는 하나님이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므로 개혁교회의 선택론은 틀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개혁교회의 선택과 유기의 교리를 악의 온상으로, 구원의 확신을 위선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증오한다. 그들은 이 교리를 일컬어 마귀의 요새요, 또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을 잡으려고 잠복하여 기다리는 사탄의 복병이라고까지 비방한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생각에는 자신이 선택받았다고 생각하는 신자들은 교만해 있거나 거룩을 위해서 더 이상 노력을 하지 않는, 할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구원의 확신을 갖지 말고 오히려 구원을 의심할 것을 가르친다. 이들의 원동력은 끝없는 의심과, 잘못하면 믿음에서 떨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는데 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도덕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늘 못마땅해 하고 판단하고 정죄한다.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선택을 확신하는 것은 그분의 일방적인 선택이 아니면 알미니안들의 주장대로 자신이 선택받을 만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것은 은혜가 온전히 은혜 되지 못한 것이다. 선택과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은혜를 온전히 은혜로 깨닫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확신이 없다면 오히려 위기감을 갖고 구해야 할 것이다.
알미니안들의 또 하나의 오류는 하나님께서 믿을 자들을 미리 내다 보시고 선택하신다고 주장한다. 언뜻 이들의 주장은 타당해 보이지만 이성적인 생각에서 나온 꿰맞춘 논리에 불과하다. 이들은 전능과 역사를 주권적으로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단지 미래를 내다봄으로써 선택하는 것으로 보는 것으로,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이미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닌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알미니안들의 무지와 오류는 하나님을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성적인 생각대로 판단하는데서 기인한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이 기준이 아닌, 선악을 스스로 분별하려는 유혹에 속은 것과도 같다.
그들의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구원과 예정에 대한 편협한 생각은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을 잘못된 개혁이라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하는 무서운 주장이다. 이들은 욥의 친구들이 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비방한 것처럼 선택과 유기의 교리가 '오직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임을 알지 못한 채 개혁자들을 도리어 불의한 폭군과 위선자로 몰아 부친다. 그들은 복음의 진실한 능력을 알지 못한 채 개혁교회의 교리를 도덕폐기론 자들로 몰아 부치는 것이다.
절대기준이 없이 살아가는 지금 이 세대에 소위 경건하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교회의 부패의 원인을 과거 이단으로 정죄된 알미니안들과 같이 ‘구원을 확신’하는데서 찾는 자들은 복음의 능력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자이며 바리새인적인 믿음을 추구하는 자들로서 종교개혁을 부정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가톨릭의 구원교리에서는 죄와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깨달은 루터는 교황청의 본격적인 면죄부 판매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전적으로 부패하여 혼자 힘으로는 죄를 용서 받을 수도,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는 인간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죄를 용서하사 우리를 구속하셨다.
그 외의 다른 길은 전혀 없는데 면죄부라니?
그것도 죽은 자의 죄까지 용서 받을 수 있는 면죄부라니?'
'하나님의 의'를 증오하기까지 하면서 '속죄'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한 끝에 깨달음을 얻은 루터는 종교개혁이 아니고 면죄부 판매를 막아보려는 온건한 의도에서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제출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통해 결국 종교개혁의 물결이 유럽 전역으로 번져나갔고, 칼빈이라는 훌륭한 개혁자가 일어나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을 체계적으로 완성했습니다.
이들은 천오백 년 전, 성경을 통해서만 믿음을 세워나가던 사도들, 초대교부들과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이들은 성경 속에서만 신앙의 기준을 찾아야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그것에 대한 온전한 믿음 외에는 속죄와 구원이 없음을 설파했습니다.
이것은 루터와 칼빈 모두가 동의하는 개혁신앙의 진수였습니다.
당연히 가톨릭의 무서운 핍박에 맞서야했던 두 사람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면서 종교개혁을 이끌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사도신경을 통해 진리와 비진리를 구분한 것처럼, 개혁교회에서는 '벨직신경' 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을 기준으로 선포하여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이 올바른 신앙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개혁교회는 초대교회 시대와 같이 가톨릭의 무자비한 박해 속에서도 급속히 성장해 나갔지만 다음세대에서는 새로운 이념의 이단들이 교회를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무리가 알미니안인데 이들은 지금까지도 교회 안에서 그 영향력을 적지 않게 끼치고 있습니다.
개혁교회는 의식과 행위를 중시하는 가톨릭으로부터의 탈피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절대주권만을 기반으로 하여 그 위에 초대교회와 같은 경건한 믿음의 신앙을 건축했습니다.
그러자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로써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인본주의적 구원관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 알미니안주의
16세기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교수였던 '아르미니우스' 는 개혁신앙의 다섯 가지 중요한 가치를 부정했는데, 그를 따르는 일단의 사람들을 '알미니안주의자' 라고 불렀습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개혁신앙의 주요한 다섯 가지 중심사상이 옳지 않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1.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거한 무조건적 선택 (예정)
☞ 예지에 근거한 조건적 선택
(예지 : 하나님께서 ‘믿을 자를 미리 아신다’는 다소 모호한 예정교리)
2. 예수님의 피는 택하신 자만을 위한 제한된 속죄
☞ 무제한적 속죄 (예정 없음)
3. 인간은 범죄로 인해 전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스스로 구원을 선택할 능력 없음
☞ 인간의 부분적 타락 (선택 능력 있음)
4. 불가항력적 은혜 (선택하셔서 구원을 베푸시면 거부할 수 없음)
☞ 하나님이 구원을 주셔도 인간이 선택하여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음
5. 성도의 견인 (택하신 사람이 잠시 죄를 따를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섭리 가운데 인도하심)
☞ 은혜로부터의 타락이 가능함
이러한 알미니안의 요청은 1618~1619년 도르트레히트 종교회의에서 논의 되어 거부되었고, 이 위험한 알미니안의 주장으로부터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도르트신경' 을 채택하여 앞의 두 신조와 함께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알미니안의 구원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구원은 신인협동, 즉 하나님과 사람의 공동노력으로 이루어지지만
구원에 대한 선택권은 전적으로 사람에게 있다.
2. 사람이 스스로 선택해서 구원 받더라도 중간에 범죄로 말미암아
구원이 취소될 수 있기 때문에
최종적인 구원은 사실상 죽기 전까지는 모른다.
개혁교회에서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말할 때 '믿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지만,
알미니안이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말할 때 '믿음'은 사람의 선함에서 나오는 선택행위입니다.
그래서 알미니안들에게 왜 행위를 강조하느냐고 물으면 이들은
"아니다. 우리도 믿음 구원이라고 말하지 않느냐?"
이렇게 핵심을 비껴가며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도르트신경을 통해 명확하게 구분 지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가톨릭도 그랬듯이 행위가 구원의 결정요소가 되는 교리는 필연적으로 죄와 그에 따른 벌을 따로 구분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 구원관은 다음 세기에 만들어진 웨슬리 감리교회의 기틀이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배경과 알미니안주의 5개 조항
17세기 초에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신앙 5개조를 거부하고 올바른 신앙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네델란드의 돌트라는 도시에서 돌트총회(Synod of Dort)가 열렸으며 이 회의에서 채택된 교리를 칼빈주의 5대교리라고 합니다.
종교회의 |
돌트총회(Synod of Dort) |
언 제 |
1618년 11월 13일 ~ 1619년 5월 9일 |
어 디 서 |
네델란드의 돌트 |
종교회의가 일어난 이유 |
네덜란드 정부의 관리였던 쿠른헤르트(Drick Koornhert)가 1583년에 하이델베르크 소요리 문답서를 비판한 (Test)라는 책을 저술하여 네덜란 드 정부에 바쳤다. 정부는 라이덴(Leyden) 대학의 교수를 비롯한 몇몇 학자들에게 이것에 대해 토의하게 했으나 결론을 보지 못하자 알미니우스에게 그 일을 요청하였다. 알미니우스는 쿠른헤르트의 저술들을 성경, 초대 기독교 신학, 그리고 몇몇 중요한 개혁가들의 가르침들과 비교했다. 그런데 그는 쿠른헤르트의 글을 읽고 오히려 변질이 되었다. 그는 1603년에 라이덴 대학에서 예정론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자 같은 라이덴 대학의 교수인 고마루스(Francis Gomarus)와 충돌하게 되었다. 고마루스는 철저한 칼빈주의자였으므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알미니우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알미니우스가 죽은 지 1년 뒤(1610년) 알미니우스의 후계자들은 소위 '항론'(Remanstrance), 즉 예정론에 대한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그 후 알미니우스의 추종자들은 '항론파'(Remonstrants)로 불렸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계적인 종교회의를 돌트(Dort)라는 도시에 개최하였습니다. 각 나라에서 온 27명의 사절과 84명의 교회지도자, 그리고 18명의 정부 고위층이 참가한 큰 회의였다. 7개월간에 걸쳐 총 154회기를 거듭한 결과 알미니안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인간의 공로를 내세우는 인본주의임을 확인했으며, 만장일치로 5대 항론을 기각시켰다. |
종교회의의 결론 |
이 회의에서 알미니안주의는 이단으로 정죄를 받고, 주모자들은 처형을 시켰으며 추종하는 무리들은 모두 국외로 추방시켰다. 그리고 알미니안주의 5대 항론에 대치되는 "칼빈주의 5대 강령"(The Five Points)을 작성하여 발표하였다.(1619년 5월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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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미니안주의 5개 조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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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 타락: 인간은 완전 타락하지 않았다. 인간은 하나님을 믿지 못할 만큼 타락한 것은 아니며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믿기로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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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적 선택: 하나님은 인간의 조건을 보고 선택하였다. 하나님께서 누가 복음을 믿을지 미리 아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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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속죄: 그리스도의 십자가 속죄는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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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항적 은혜: 성령께서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베푸시는 은혜를 사람은 거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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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으로부터의 탈락: 한 번 구원을 받은 사람도 훗날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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