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중부 라카인 주정부가 무슬림 주민들을 대상으로 아이를 2명까지만 갖게 하는 선별적 산아제한을 하겠다고 해 논란을 불러일으겼던 적이 있는 라카인 주 정부는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국경지대 무슬림인 로힝야족 2개 마을에 국한되는 조치라고 밝혔으며, 그 대상지역인 마웅다우와 부티다웅은 주민 95%가 무슬림인 곳이다
지역에서 종교에 따른 산아제한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주 정부는 ‘종교 간 긴장을 줄이기 위해’ 내놓은 조치라고 했으며, 로힝야족 출산율이 높아 인구가 급증하면서 다른 주민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뭐라든 이 조치는 나치 같은 인종주의자들의 선별적 산아제한 같은 우생학적 조치를 연상케 한다.
미얀마 주 정부는 ‘종교 간 긴장’을 운운했지만 실제로는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주의적 차별이었던 것이다.
반발이 일자 미얀마 정부는 라카인 주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을 재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의구심은 가시지 않는 부분이다. 오래전에는 미얀마의 아라칸 주에서 무슬림 로힝야족 마을이 불에 탓으며
당시 정부군과 아라칸의 버마족은 로힝야족을 ‘인종청소’ 식으로 학살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정부의 탄압을 받아온 로힝야족 무슬림 200여명이 정부군에 살해되었고, 정부는 1991년 군정 시절에 폭동을 진압한다며 로힝야족을 상대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였으며, 로힝야족 20만명 이상이 난민이 됐다
최근 몇년 새 아웅산 수지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풀려나 정치활동을 재개했고,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주요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군부정권에서 ‘민간 정권’으로 탈바꿈한 테인세인 대통령이 최근 미국을 방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만나면서 미얀마는 국제무대에도 완전히 복귀했다.
그동안 미얀마 군부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버마’라는 이름을 고수해왔던 미국 정부는 이번 테인세인 방문 때에는 ‘미얀마’라는 호칭을 썼다. 이전의 맹방인 중국과 미래의 우방인 미국이 앞다퉈 미얀마에 구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정치적 ‘민주화’의 걸을 걷고 있는 미얀마의 분위기는 심상찮다. 정치적 억압의 무게가 줄어들면서 행동의 고삐가 풀린 다수 버마족들이 소수 부족이나 무슬림들을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를 위한 민주화가 ‘다수만을 위한 민주화’가 되어, 핍박받는 소수에는 오히려 더 큰 차별과 괴롭힘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또한 메익틸라는 주민 30%가 무슬림이다. 당초 충돌은 작은 금은방에서 시작됐다. 불교도 부부가 금붙이를 가게에 팔려다 가격 시비가 붙었다. 상술이 뛰어난 무슬림들은 이 지역 상업과 운송을 장악하고 있다. 불교도들은 무슬림 가게들을 부수고 조직적으로 약탈했다. ‘이슬람 혐오’를 대놓고 주장해온 유명 승려 아신 위라투 등은 종교 간 적대에 기름을 부었다. 아신은 “무슬림들을 그냥 두면 우리나라가 아프가니스탄처럼 될 것”이라고 선동했다. 불교도들의 잇단 공격에 무슬림 40여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오히려 이 살인극 뒤 약탈당한 금은방 주인 부부가 절도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중국과 맞닿은 북부 카친주는 소수민족인 카친족의 주요 거주지역이다. 대부분 불교도인 버마족과 달리 이들은 기독교 침례교파다. 과거 영국 점령통치 시절 기독교도가 됐다. 교회와 학교에서 카친족 청소년들은 버마어가 아닌 카친어를 쓰고 있다
2011년 6월 이곳에서는 중앙정부에 맞선 봉기가 일어났다. 정부군의 진압으로 일단 봉기는 잦아들었지만 반군인 카친독립군에 지원하는 카친족 젊은이들이 크게 늘었다. 또다른 소수민족인 이웃의 와족과 연대해 내전을 하자는 강경파들도 있다. 카친독립군은 4000명이지만 와족 군대는 2만명에 이른다. 소수민족들이 정말로 뭉쳐 봉기한다면 민주화와 경제개발에 나선 미얀마에 불안요인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미얀마 건국영웅인 아웅산 장군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여러 민족이 공존하는 연방정부를 구상하고 샨족, 친족, 카친족 등과 협정을 맺었다. 소수민족에게 광범한 자치를 허용하되 군대는 통합운영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웅산은 독립 직후인 1947년 암살됐다. 1962년 집권한 네윈 장군의 군사독재정권은 소수민족의 자치 요구와 종교간 균열을 폭압으로 억눌렀다. 기독교 성경을 금서로 만들고 무슬림 마을에 불교 사원과 파고다(탑)를 지었다. 군부는 소수집단을 억압하고 ‘버마화’를 강요했다. 지금도 불교도가 아닌 이들은 관리가 될 수 없으며 군대에 들어가지 못한다. 무슬림들을 아예 자국민이 아닌 불법이주자로 규정해 쫓아내기도 한다.
이웅산의 딸이자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수지가 정치를 재개하고 민주화 조치들이 이뤄지고 있지만 내부의 균열은 더 커지고 있고, 앞으로 여러 가지 산재한 문제들 중에서도 고통받는 소수집단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 숙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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