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말씀:: 십일조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십일조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말 3:7-12)
윈스턴 처칠이 어느 날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를 방송하기 위해 BBC 방송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그가 택시를 잡아타고 'BBC 방송국으로 갑시다!' 했더니 이게 웬 일입니까? 운전기사가 승차를 거부합니다. 까닭인즉슨 이제 한 시간 뒤에 위대한 정치가 처칠 경이 중요한 방송을 할 터인데 자기가 BBC 까지 가다보면 그 방송을 듣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칠은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1파운드를 내놓으면서 '그러지 말고 좀 갑시다.' 하고 짐짓 애원 조로 부탁해보았더니 이 기사 아저씨가 '에라 모르겠다.'고 하더니 중얼거립니다. '타세요! 처칠인지 개떡인지 내가 알게 뭐냐 돈이나 벌어야지' 사람들의 우선순위는 단연코 돈입니다.
▶어느 시골교회에 신앙이 좋은 집사님이 그 남편을 어렵게 전도해서 목사님의 심방을 받았습니다. 목사님이 너무 기뻐서 등록을 받고 여러 대화를 나누는 중에 그 남편이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예수 믿는데 비용이 얼마나 듭니까?' 친척들이 교회를 다니면 비용이 많이 드니까 천주교를 다니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형제님, 얼마나 비용이 들면 믿으시렵니까?' '담뱃값 정도만 괜찮겠습니다.' '왜 담뱃값 정도를 생각했습니까?' '예수 믿으면 담배를 끊을 테니까 그 돈을 예수님께 바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 정도면 넉넉합니다.' '비용이 별로 안 드네요?' 그래서 그 분이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분의 예수 믿는 비용이 조금 올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어떻게 비용이 올랐습니까?' 했더니 '예수 믿고 술을 끊어서 술값을 더 보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잘 하는 그 분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권면을 하자 신앙생활 한 지 3년이 다 되도록 세례를 안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인 집사에게 '왜 세례를 안 받는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그 부인이 하는 말이 '목사님, 제 남편이 무슨 말을 들어서 안 받습니다.' '아니 무슨 얘기를 들었는데요?' '세례 받으면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 안 바치려고 세례를 안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믿음이 들어가고 은혜를 받자 먼저 목사님에게 십일조에 대하여 묻습니다. '목사님, 십일조를 바치려면 수확의 십일조입니까? 비용을 다 제하고 십일조입니까?' 그래서 '비용을 제하고 바쳐도 되고 수확의 십일조를 바쳐도 되는데 믿음대로 하면 됩니다.'라고 했더니 '비용을 다 제하고 나면 얼마 안 되는데...' 그러면서 그 해 비용을 제하고 쌀 두 가마니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해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에 놀라운 사실이 벌어졌는데 이 분이 추수감사주일에 쌀 20가마니를 바쳤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이 '아니 무슨 비용이 10배나 올랐습니까?' '목사님, 비용을 많이 올렸습니다. 자식도 공부 잘 시키려면 유학 비용이 많이 들고 옷도 좋은 옷을 사 입으려면 비용을 많이 들이는데 내가 천국 백성이 되어서 어떻게 비용을 값싸게 지불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 님께서 감동하셔서 비용을 비싸게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할/
이 분이 장로가 되어 교회를 잘 섬겼답니다. 그랬더니 그 자식들이 모두 다 잘되어서 신앙생활을 잘하고 산다고 합니다. /할/
예수 믿고 가장 큰 부담이 있다면 십일조 바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넉넉한 살림이라 해도 십일조를 부담입니다. 월급 타서 빠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거기에서 십일조를 바치려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래서 십일조를 못 바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활이 넉넉해도 십일조를 안 바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중대한 교훈을 줍니다.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은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복을 받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하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할/
우리가 잘 산다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잘 되어야 합니다. 육체가 건강해야 잘 삽니다. 사업도 잘 되어야 합니다. 가정도, 자녀들도 잘 되어야 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어느 하나만 잘 되어서는 안됩니다. 여러 가지가 종합적으로 잘 되어야 합니다. /아멘!/
본문에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은 복을 너무 많이 주셔서 넘쳐서 쌓을 곳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또 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나를 시험하여...' 이 말은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시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시험하라'는 말을 학자들은 '증명하다, 확증하다'로 해석합니다.
오늘 본문 중에서 우리를 흥분시키는 두 문장이 있습니다. '하늘 문을 열고' 그리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겠다.'는 문장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 이야기'는 '돈의 이야기'가 아니라 '축복의 이야기'입니다.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설교가 아니라 신나는 설교입니다. /믿/ ◀제목 소개!▶
▶성경에는 중요한 열쇠 네 가지가 있습니다.
⑴천국에 들어가는 '믿음'의 열쇠입니다.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그 믿음이 열쇠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마16:19절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⑵어떤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기도'의 열쇠입니다. 기도는 지금도 역사를 일으킵니다. 기도는 지금도 응답됩니다. 마7:7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⑶말씀을 잘 지킴으로 하늘 보고를 여는 '순종'의 열쇠입니다. 신28:12절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⑷오늘 주제가 되는 물질 축복의 문을 여는 '십일조'의 열쇠입니다(10).
▶성경에는 '십'자로 시작하는 정신이 세 가지 나옵니다.
'십계명 정신', '십일조 정신', '십자가 정신'이 그것입니다.
'십계명 정신'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십일조 정신'은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정신입니다. '십자가 정신'은 인류의 죄를 청산하시려고 갈보리언덕 십자가위에서 피 흘려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신 우리의 생명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정신입니다.
①본문의 배경을 알아 보자!
말라기 선지자(B.C. 432년경)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를 회개하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물질의 축복을 받으라고 전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마지막에 나오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B.C. 722년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고, B.C. 586년 남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끌려가 오랫동안 포로로 생활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교만했던 죄를 다 회개하고 겸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에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B.C. 537년 바사의 고레스 왕 때 1차로 스룹바벨의 인도로 돌아와서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B.C. 458년 2차로 에스라의 인도로 돌아와 신앙개혁운동을 일으켰습니다. B.C. 444년 3차로 느헤미야의 인도로 돌아와서 성벽까지 재건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국가가 세워지고 부요하고 평안한 삶을 살게 되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지 100년이 지나도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렇게 저주를 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고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했기 때문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잃어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고 돌아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지 않나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으로! 십일조로! /할/
②십일조의 유래를 먼저 생각해 보자!
십일조는 율법이므로 구약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십일조는 율법 전에 이미 생긴 것입니다.
십일조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에게 지키며 다스리라고 말씀하시고 한가지를 명령하십니다. '선악과는 내 것이니 손대지 말라' 이것이 십일조의 시작입니다. '동산의 모든 과일은 임의로 먹되 선악과는 손대지 말라 이것은 내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내 것이니 손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도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보는 곳에서 땄기 때문에 강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좌우 편에 강도가 있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강도의 후손이 우리 죄인들입니다. 인류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죽을 때 양쪽에 강도를 데리고 죽습니다.
그리고 또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소돔 전쟁에서 롯과 소돔 사람들을 구하고 돌아와서 승리의 감격을 멜기세덱에게 십일조에 담아 드렸습니다(창14:20).
야곱의 십일조도 나옵니다. 창28:22절 이하에 보면,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하던 야곱이 벧엘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받고 감격 속에 서원한 것이 십일조입니다.
이들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고 감격 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자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의 고백이 담긴 헌금입니다. 승리를 맛본 후에 아브라함이 드린 것이고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한 야곱이 벧엘에서 감격스럽게 서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이 생기기 약 5백년 전에 이미 십일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가 구약의 첫 책인 창세기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 역시 십일조를 언급합니다. 창세기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감격의 표시로서 드려진 십일조입니다. 말라기의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면서 생긴 잘못된 헌물과 십일조 생활을 바로 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도 이 구약의 십일조를 인정하셨습니다. 마23:2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주님이 십일조를 폐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것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정신적으로 더 높은 의의 삶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③십일조를 드리는 우리의 정신적인 자세는 무엇인가?
⑴십일조는 드리는 자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소유물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직접적인 하나님의 것은 십일조입니다. 다른 것은 나의 소유를 가지고 임의로 정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나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⑵십일조는 드리는 자가 금액을 정하지 못합니다.
'내가 얼마를 드려야 되겠다.' 그렇게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습니다. 내 수입의 온전한 십분의 일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미리 정해 놓았습니다. '내가 이만큼 드리면 되지' 그렇게 내 맘대로 액수를 정하지 못합니다. 십일조는 내 것이 아니요 주의 것이요, 액수는 내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⑶십일조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입니다.
하나님은 물질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원하십니다. 헌금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종의 고백입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십일조는 물질에 대한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의 확증입니다.
십일조를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고 두려운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분이 좋으면 내고 기분이 나쁘면 안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최고의 복은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 복입니다. /아멘!/
▶영국에 유명한 선교사 리빙스톤이 어린 시절에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는데 은혜를 받았습니다. 헌금시간에 헌금 접시를 돌리는데 헌금할 돈이 없으니까 헌금을 다 걷고 접시가 정리된 후에 그는 접시를 내려놓고 그 위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리빙스톤, 지금 무엇을 하느냐?' '목사님, 하나님 앞에 바칠 것이 없어서 마음과 몸을 바치려고 이 헌금 접시 위에 올라갑니다.' 그 헌신과 사랑의 마음으로 그는 아프리카의 위대한 선교사, 우리가 사랑하는 리빙스톤이 되었습니다.
⑷십일조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 됨을 고백하는 가장 중요한 헌금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주장은 구약에서 뿐 아니라 신약에서 특히 강조하는 중심적 사상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므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롬14:8).
⑸십일조는 우리들의 삶에 우선 순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현재의 수입을 가지고는 십일조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 저것 꼭 써야 할 것을 다 떼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좀 더 수입이 늘면 그 때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도 못합니다. 십일조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지 여유가 생기면 하는 일이 아닙니다.
⑹십일조는 내 인생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신앙적인 확신입니다.
지금 내 손에 들고 있는 것이(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께서 얻게 하신 결과임을 아는 고백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쌓을 것이 없도록 부어주실 것을 바라보고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목적이라면 잘못 투자한 것입니다. 감격이고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⑺신앙고백으로서의 십일조를 하는 사람이라면 삶의 모습도 달라져야 합니다.
마23:23절에서 주님은 십일조와 함께 '의와 인과 신'의 삶을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라기의 강조점도 삶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거룩한 삶의 한 표현입니다(5,6절).
십일조, 그것은 신앙고백입니다. 그것은 정말 주님을 나의 전부로 여기며 우리의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임을 고백하는 중요한 표현입니다.
④왜 우리가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가? 그 이유가 무엇인가?
⑴십일조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공짜로 그 하나님의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특별히 가축의 첫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첫 것을 구별할 줄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십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에게 돌려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⑵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복을 받겠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이 세상에서도 사람의 것을 도적질하면 절도죄로 중형을 받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서야 어떻게 되겠습니까?
⑶온전한 십일조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는 저주와 심판을 받습니다.
⑤십일조를 통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가?
⑴하늘 문이 열리는 복과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이 말씀은 말라기 선지자의 말이 아닙니다. 목사의 말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의 주인이심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늘과 땅과 바다, 온 우주를 창조하신 조물주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속이지 말고 수입의 십분의 일을 온전하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드리는 것이 축복의 기름길입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창고', 즉 성전, 나의(하나님) 집인 교회에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축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하늘에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제때에 비가 풍족하게 오면 농사가 잘되어 목축도 잘되고 사람도 풍족하게 됩니다. 그러나 제때에 비가 오지 않고, 6개월, 1년, 2년, 3년 비가 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식물은 다 말라버리고 짐승과 사람도 굶주리게 됩니다. 하늘로부터 적당히 비가 내려야, 하나님께서 근본적인 축복을 주셔야 모든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14:22, 29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고 가르쳤습니다.
대하31:6, 10절에도 '히스기야도 유다 백성과 함께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는 복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와 헌물이 축복이 되어 다시 그들에게 돌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인복과(福因福果)'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된 일을 하면 복된 결과를 얻는다는 뜻입니다. 좋은 씨를 심어야 좋은 열매를 맺듯이, 하나님 앞에 축복과 사랑을 받으려면 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10절에 '내가 하늘 문을 열고' 십일조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요, 통로입니다. 반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하늘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부는 절대로 그물을 팔지 않습니다. 농부는 아무리 어려워도 종자 씨를 먹지 않습니다. 화가는 아무리 살림이 어려워도 붓을 없애지 않습니다.
목수는 망치와 대패는 어디를 가든지 가지고 다집니다. 내 머리를 깎아 주는 이발사는 6.25때 가위 하나만 들고 다니면 먹는 문제를 해결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위는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성도는 십일조만은 절대 건드리면 안 됩니다. /아멘!/
⑵황충이 금하게 되는 복을 받습니다(11).
여기서도 다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황충을 금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황충은 아프리카 사막지대의 메뚜기 떼로, 순식간에 논밭의 곡식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기 때문에 한해 농사를 망치고 맙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의 것을 드리지 않을 때에 황충이 달라붙습니다. 사고, 질병, 사기, 문제, 부도 등의 바로 황충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재앙을 막아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재산이나 건강이나 가정에 손해나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⑶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 복을 받습니다.
과일은 떨어지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어야만 합니다. 수고한 대로 먹고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의미 깊은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것을 바로 드리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 그곳에는 놀랍고 풍성한 복이 있습니다.
⑷땅이 아름다워지는 복을 받습니다(12).
땅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지상의 땅이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나라가 어디입니까? 십일조를 잘 바치는 나라들입니다. 호주, 뉴질랜드. 미국, 영국, 독일 다 십일조의 나라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심령이 땅입니다. 심령의 땅이 아름다워집니다. 이런 사람은 육체가 강건합니다. 십일조를 잘 바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경제적인 철학과 윤리가 확립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청교도의 신앙인데 전 세계적으로 경제를 바르게 확립해서 살아가는 자본주의의 원리가 십일조의 신앙을 가진 나라들입니다.
'땅이 아름다워진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의 땅은, 하나님께서 옥토가 되게 하셔서 농사가 잘되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즉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하는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셔서 기쁨과 만족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이삭 같은 경우도 그 나라에 가뭄이 들었는데 이삭만 그 해에 농사 100배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⑸열방이 복되다고 칭찬하는 복을 받습니다(12).
우리 기독교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종교가 아닙니다. 이론적인 종교가 아니며 실제적, 현실적인 종교입니다. 우리가 바로 믿고 순종하면 현실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줄 믿습니다.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라가 잘되고 번창해서 '과연 당신네 나라는 복 받은 나라입니다.' 하고 주변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의 칭찬이 자자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잘났다고 하면 뭘 합니까? 남들이 인정해 줘야 합니다. 내가 내 자식 칭찬하면 뭘 합니까? 주변에서 칭찬해 줘야 그것이 진짜 칭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열방이 복되다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패가 아니라, 성공하는 역사를 베풀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거지도 자기들끼리 모이면 되게 자기 자랑하는 거지가 있습니다. 자기는 남보다 수입도 많고 잘나고 똑똑하다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랑을 해도 거지는 거지일 뿐입니다. 거지가 잘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남이 칭찬을 해 주어야 진짜 칭찬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떠들어도 남이 인정해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칭찬 받고, 사람 앞에 칭찬 받아야 합니다. 또한 열매가 좋고 자손이 잘되어야지 자기 자랑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사람에게는 열방이 복되다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친척뿐만이 아닙니다. 이웃뿐만이 아닙니다. 주변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이웃의 모든 나라가 복되다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한국도 1천만 기독교 신자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 이스라엘보다도 더 복 받는 나라가 될 것을 믿습니다. 일본보다 중국보다 더 잘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일본과 중국을 따라잡겠습니까? 광활한 땅, 13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을 우리가 무엇으로 따라 잡겠습니까? 일본의 선진 제도를 어떻게 따라 잡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십일조를 잘 드리는 민족이 되면, 하나님께서 한국을 축복 받는 나라로 만들어 주십니다.
나라의 장래를 생각해서라도, 앞으로 한국이 21세기에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넘치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라도, 여러분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성도가 십일조를 바치므로 여섯 번 놀랐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십일조를 바치므로 자기 신앙이 더 확고해져서 놀랐고, 두 번째는 십일조를 바치고도 나머지로 넉넉하게 살아가는데 놀랐고, 세 번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놀랐고, 네 번째는 십일조를 내보니 더 낼 수 있는 담력이 생겨서 놀랐고, 다섯 번째는 십일조를 내면서 자신의 생활이 물질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을 보고 놀랐고, 여섯 번째는 이런 축복을 진작 받을 것을 왜 이제야 받았던고 그러면서 후회하면서 놀랐다는 것입니다.
▶몽골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몽골은 목축하는 나라입니다. 몽골에서 겨울 땔감으로 가장 좋은 것은 소똥입니다. 여름 내내 소똥을 말려 둡니다. 겨울에 아궁이나 난로에 소똥 한 개를 넣어 두면 밤새 은은히 타면서 훈기가 끊어지지 않습니다. 석탄은 금방 타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소똥은 겨울을 나기에 필수품이고 비싼 땔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초신자가 선교사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십일조는 돈으로만 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십일조는 소 10마리 나면 한 마리가 십일조이고, 양이 20마리 나면 2마리가 십일조입니다.' '알았어요.' 그리고 다음 주에 교회에 와보니 온통 소똥 냄새였습니다. 강대 상에 소똥을 한 가마를 올려놓았습니다. 냄새가 진동했지만 십일조의 축복을 강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음날부터 동네 모든 소들이 그 집 마당에 와서 똥을 싸고 갔답니다. 놀라운 수입입니다.
▶미국에 백만장자 A.A.하이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가 은혜 체험을 하고 십일조를 하기로 결단하였을 때는 약 7,00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부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십일조부터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이 그에게 와서 물었습니다. '이는 경제원칙에 어긋납니다.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 빚부터 갚아야지 어떻게 십일조부터 합니까?' 그 때 하이디가 '나는 부채를 상환하는 것보다 도둑질을 한 것을 먼저 갚는 것이 옳다고 믿고 있소' 직원들이 깜짝 놀라서 '아니 사장님이 무엇을 도둑질을 했습니까?' 하이디가 오늘 본문을 펴들고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십일조를 도둑질한 도둑놈이요' 통곡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보시고 후에 엄청난 축복을 해주셔서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아멘!/
⑥십일조를 드려도 복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⑴즐거움과 감사로 하지 않고 부담감과 의무감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수입이 많은 분일수록 인간의 계산이 앞섭니다. 그러나 의무감으로 드리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십의 일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⑵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⑶십일조를 드리고 스스로 의롭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의롭게 생각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 내가 십일조를 드리기 때문에 예수를 잘 믿는다고 교만하면 안됩니다. 더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 아주 인색하기로 소문이 난 김 권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권사님은 재산은 많았지만,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는 것이 아까워서 감사헌금만 조금씩 드렸습니다. 그런데 3대 독자 아들이 장가를 갔는데, 며느리가 임신을 하기만 하면 낙태를 합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세 번째 임신을 하자,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뭐 좋은 방법이 없겠습니까?' '함께 기도해 보십시다,' 그런데 목사님이 기도하시던 중에 하나님께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는 말씀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펼쳐 놓고는 권사님에게 말했습니다.
'권사님,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렵겠지만 십일조를 드리셔야 되겠습니다.' 이때부터 인색하기로 소문난 이 권사님이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며느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며느리의 배가 점점 불러지더니 기한이 다 되어 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옥동자 같은 아주 귀여운 손자를 낳았습니다.
권사님은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십일조가 세긴 세구나!' 그는 진작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던 것을 후회하며, 축복을 받으려면 십일조를 드려야 한다고 솔선해서 가르치고 전도했습니다.
⑦헌금의 바른 원리를 알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은혜입니다.
고후9:6-8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⑴많이 심어야 많이 거둡니다.
6절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헌금은 축복의 씨앗입니다. 다시 말해서 헌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거두기 위해서 심는 씨앗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에게 헌금을 심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거두게 하십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자연의 법칙을 예로 들었습니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했습니다. 이는 법칙입니다. 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농부는 씨를 심습니다.
잠3:9-10절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⑵즐겨 드리는 자세를 몇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7절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사랑하지 않아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지는 않으면서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면 주게 되어있습니다. 예컨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하면 반드시 주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는 하나님에게 즐겨 바치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즐겨 복을 주시게 됩니다. /할/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해야 합니다. 각각이라는 말은 '각자가'라는 뜻입니다. 헌금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금액을 정해서 일률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힘써 하나님에게 바쳐야 합니다.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드릴 헌금을 미리 마음에 정하며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 헌금에 우리의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인색함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억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⑶축복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8절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들의 착한 마음을 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그들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물질의 복을 풍성하게 내리시는 것입니다.
⑧보너스로 주 앞에 설 때까지 성도가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이 무엇인가?
⑴주의 날은 손대지 말라! 엿새는 우리에게 다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은 우리의 날이 아닙니다. 6일이 나를 위해서라면 7일째 한 날은 주님을 위하여 드리는 날이 되어야 하며 이 날은 내 맘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믿/
⑵십일조는 손대지 말라! 모든 수입의 10분의 9는 우리가 사용하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10분의 1은 하나님의 것으로 결정되어 있으니 이것만큼은 맘대로 하면 안 됩니다.
⑶하나님의 집에 있는 성물을 손대지 말라! 이 땅의 모든 것은 내 생각대로 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것으로 바쳐진 것은 내 맘대로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바쳤더라도 내 손에서 떠나 주님께 드린 바가 되면 내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했다고 생각하면 마귀가 시험을 가져오게 되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⑷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쓰는 주의 종에게 손을 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불러 쓰시는 종을 인간이 간섭하거나 괴롭히면 큰 낭패를 당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다윗에게 손을 댄 사울 왕의 가정은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것들은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하고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에 손댈 때는 하나님이 무섭게 간섭하시고 진노하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멘!
'신앙 아카데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학]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0) | 2018.02.21 |
---|---|
[신학] 종려주일의 그 연원과 의미, 그리고 고난주간 (0) | 2018.02.21 |
[주일예배설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0) | 2018.02.21 |
[신학] 구원에 이르는 門 (0) | 2018.02.21 |
[기독 절기별 설교] 사순절 설교 (십자가의 길) (0) | 2018.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