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직헌신예배]인정받는 일꾼
제목 : 인정받는 일꾼
말씀 : 창24:1-4
1.충성스러운 사람이 결국 인정을 받습니다.
미국에 한 대형 가구점에 존이라는 청년과 몇 명의 점원이 있었는데 이 가구점 사장은 술도 잘 먹고 나이트 클럽에도 자주 다니면서 호탕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직원들을 데리고 술집과 나이트 클럽엘 가서 먹고 마시고 춤추며 즐기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던 존은 그들이 아무리 권해도 그런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사장이 존을 불러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줄도 알아야 되고, 술도 마시고 여자들과 어울려 춤도 추고 세상을 즐기며 살아야 한다면서 그렇게 술도 안 먹고 어울리지도 않고 그러면 사람이 꽉 막히고 좁쌀영감처럼 되어 못쓴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존은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면서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술집을 드나든다거나 기타 다른 방탕한 일로 어울리는 것 이외의 건전한 모임에는 직원들과 잘 어울리면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지났을 때 가구점 사장은 그만 암에 걸려 3개월 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고 일주일에 한번씩은 목사님을 모셔 와서 예배도 드리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사장은 목사님까지 모셔 올 것이 뭐 있느냐 존이 있지 않느냐면서 존을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존이 들어오게 되었고, 존은 이제라도 예수님 믿으면 죄용서 받고, 구원도 받고, 평안을 얻을 것이라고 하자 사장은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의 방탕한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존에게 지금까지 나쁜 말로 유혹하고 오히려 책망한 것에 대하여 잘못했노라고 하면서 사과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가족들과 존을 다시 불러 재산의 절반은 아내에게 주고 나머지 절반은 두 아들과 존에게 똑같이 나누어 줄 것이며, 가구점의 운영은 존에게 맡긴다는 유언을 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의 유언대로 존이 가구점을 맡게 되었는데 이후로 이 가구점은 점점 번성하여 미국 전역에 여러 개의 분점을 내어 미국 굴지의 가구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충성스럽고 신실한 사람은 결국 인정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악하고 변질되고 왜곡된 풍조가 만연되어 있다고 해도 성실하고 진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은 언젠가는 사람에게도 인정받고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24:45,46절에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보면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함으로 주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아 귀하게 쓰임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요셉입니다. 그는 형들에 의하여 억울하게 애굽으로 팔려갔으나 누구도 원망 불평 한탄 절망하지 않고 그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살아감으로 주인 보디발의 신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또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었으나 감옥에서조차 원망 불평 탄식이 아니라 그저 성실하게 충성스럽게 일할 때에 간수장의 신임을 받아 다른 죄수들을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러다가 결국은 애굽의 총리에 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사무엘도 엘리 제사장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언제나 성실하고 진실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쓰셔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바로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일생동안 아브라함을 섬기던 종이었는데 얼마나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아브라함을 섬겼던지 아브라함은 이 사람을 아들처럼 여기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맡아서 관리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신분은 종이었지만 아브라함에게는 너무나 귀한 아들과 다름없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받고 복을 받습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세상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너무나 귀한 사명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세상의 것을 위해서도 충성스럽게 일해야 한다면 이 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을 위해서는 얼마나 더 충성스럽게 일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의 것을 위해서 충성해도 인정받고 귀히 여김받고 복을 받는 데 이 영광스럽고 귀한 일을 위하여 충성할때에 얼마나 더 귀하에 여김 받고 복을 받겠습니까?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어떤 삶의 자리에 있든지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명에 대하여 정말 감사하며 기뻐하며 진실하고 성실하게 충성을 다할 때에 하나님과 사람 앞에 귀히 여김을 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2.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엘리에셀은 비록 종이었지만 아브라함이 정말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아브라함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는지 아브라함은 이 사람을 아들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창15:2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이 당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복의 근원이 되고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티끌과 같이 많게 해 주마 약속을 받은 지 10년쯤 지난 뒤였습니다. 그런데 십년이 지나도록 아들이 없자 아브라함은 직접적인 내 혈육이 아니어도 다른 방법으로 번성케 하시려나보다 하고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모든 상속권을 엘리에셀에게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엘리에셀이 얼마나 신뢰받고 사랑받는 종이었는지 능히 짐작이 가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사랑받고 신뢰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는 맡은 일에 거짓 없이 진실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충성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시키지 않아도 감시하지 않아도 누가 보거나 말거나 그저 정직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자신의 맡은 임무에 충실하였던 것이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전폭적으로 믿었고 사랑했고 귀하게 여겨 아들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당연하지 않습니까? 어디서든 정말 진실하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결국 사랑받고 인정받지 않겠습니까? 직장에서도 누가 보거나 말거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하는 사람이 결국 상사나 동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지 않겠습니까?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결국 주님과 성도들로부터 사랑과 신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도 특별히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 중에 한 가정이 베다니의 나사로의 가정이었습니다. 요11:5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다른 어떤 사람이나 가정보다 이 가정을 더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이 가정을 들리시곤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제자들 중에도 더 사랑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요19:26에 보면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 요한인데 이 사람은 소개 할 때에 사랑하는 제자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요13:23, 요19:26, 요20:2, 요21:7, 요21:20) 물론 왜 다른 제자들을 사랑하시지 않았겠습니까만 이 제자는 그 중에 더 특별히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들이 더 사랑을 받았겠습니까? 그냥 아무 연고없이 예수님이 그들을 편애하셨겠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당연히 그들이 더 신뢰할만하고 더 충성스럽고 더 주님의 뜻을 잘 헤아릴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도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더욱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감으로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사랑받고 칭찬받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정말 성실하고 진실하게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주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를 따라 직분과 직책과 사명을 따라 성실하고 진실하게 충성스럽게 섬길 때에 진실로 주님의 사랑받는 제자가 되어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고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3.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에 완전히 신뢰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4절을 보겠습니다.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이 말씀을 잘 보세요. 네가 택하라는 것입니다. 데리고 와봐라, 와서 내가 보고 결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네가 택하여 데리고 오면 무조건 그를 나의 며느리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엘리에셀을 신임했으면 네가 택하여 데리고 오면 무조건 며느리로 삼겠다고 하였겠습니까?
여러분, 이삭이 보통 아들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입니다. 그것도 100세에 얻은 독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중차대한 사명을 맡고 있는 아들입니다. 그러니 이 아들의 결혼 문제가 얼마나 중대한 일이겠습니까? 자칫 며느리가 잘못 들어오기라도 하면 얼마나 낭패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 중차대한 일을 자신의 종 엘리에셀에게 완전히 위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알아서 해라. 네가 택하라고 말입니다.
또 오늘 말씀 2절 상반절을 보아도 이 엘리에셀이 얼마나 신임을 받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아브라함의 모든 소유를 전적으로 엘리에셀에게 맡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은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뒤에 말씀드리겠지만 그는 자기 집에서 기르는 군사가 318명이나 되었습니다. 얼마나 부자면 개인 사병이 318명이나 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엘리에셀에게 완전히 맡겼던 것입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이 100% 믿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에셀이 어떻게 이렇게 신뢰를 받았겠습니까? 뭐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거짓없이 성실하게 지혜롭게 충성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진실하게 열심히 충성스럽게 주인을 섬겼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이런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정말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진실하게 성실하게 섬겨야 합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거나 말거나 상황과 환경이 어떠하든 감사와 기쁨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과 사람 앞에 신뢰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모든 상황 모든 환경에서 신실하고 정직하고 열심히 주님을 섬길 때 정말 신임 받는 종이 되어 귀하게 아름답게 쓰임 받으며 주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며 주님의 은총을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4.주인의 뜻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엘리에셀은 주인의 뜻을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말씀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가 아브라함의 지시를 따라 며느리 감을 구하는 과정 가운데서도 너무나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지시를 받고 아브라함의 혈족이 있는 나홀의 성에 이르러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12절 말씀을 봅니다.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여기서 보면 우리는 엘리에셀의 신실한 모습을 보게 되는데 우선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유익이나 복을 위해서가 아니고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것은 아브라함이 기도하고 원했던 그런 며느리 감을 만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인간적으로 조건 좋은 며느리 감도 아니라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이삭을 잘 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런 며느리감을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14절 말씀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그러니까 이 종은 그저 얼굴 예쁘고 키 크고 능력 있고 그런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씨가 얼마나 곱고 남을 배려하고 사랑할 줄 아는지 그런 것을 본 것입니다. 마땅히 그런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의 배필감으로 합당하고 마땅히 아브라함이 기뻐할 만한 며느리 감 임을 오랜 세월 아브라함을 섬겼던 사람으로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종은 언제나 주인의 뜻을 헤아려야 합니다. 주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고 내가 좋은 것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의 뜻을 잘 헤아려 그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착하고 충성된 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주되신 주님의 뜻을 항상 헤아릴 있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과 내 의지를 버리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모습이나 가치관을 버리고 오직 주님의 뜻과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의중을 헤아려 그것을 이루어 드리기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정말 주님의 마음에 꼭 맞는 일꾼이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5.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종이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은 한번도 자신을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종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의 가정은 이삭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거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창14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소돔에 거할 때에 북방에 있는 다섯왕이 소돔지역을 침공하여 소돔들과 롯의 가족과 모든 재산까지도 약탈해가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집에서 기르고 연습한 종들 318명을 데리고 가서 그들을 물리치고 조카 롯과 그 재물들 그리고 소돔사람들까지 다 찾아와 소돔왕에게 인계해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 이만하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큰 가문을 이루고 있었는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318명이나 되는 종을 이끌고 가서 한 나라와 싸워 이길 정도면 얼마나 대단한 가문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엘리에셀은 이런 집의 모든 것을 맡아 관리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엘리에셀은 아브라함 족장 가정의 집사 혹은 총무로써 전권을 가지고 그 집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얼마나 신임을 받았던지 이 엘리에셀을 양자로 삼아 그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가정 안에서 이 엘리에셀의 위치가 어떠했겠습니까? 그의 말한마디면 그 집안에서는 다 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웬만한 사람 같으면 목에 힘이 들어가고 거드름을 피웠을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인양 행세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에셀은 언제나 종의 신분을 잊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디에도 그의 경거망동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100% 그를 신뢰했습니다. 그만큼 이 엘리에셀은 그저 겸손히 그저 종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서 주인을 섬겼다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럴 때 물론 그는 아브라함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고 귀히 쓰임받고 아브라함의 마음도 흡족하게 해 주었던 멋진 인생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빚진 자로서 수고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에 억분의 일이라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고 대접해주지 않아도 감사와 기쁨으로 섬겨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수고해도 아니 심지어 목숨을 드려도 우리를 내세울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눅17: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내 모든 것을 바쳐도 그저 할 일을 한 것 뿐, 거기에 대해서 무슨 공로나 업적을 내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은혜는 그보다 천배 만재 억배 더 크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열심히 헌신하고 수고하고 섬긴 자들에게 아무런 상급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분명히 상급이 있습니다. 칭찬이 있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사람과 사람끼리는 서로 인정할 것은 인정해 주고 칭찬해 줄 것은 칭찬해 주고 귀하게 여겨 줄 것은 여겨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섬기가는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급은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사실은 주지 않아도 되는데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주님이 우리를 어여삐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바라고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감사와 기쁨으로 하다보면 주님이 주실 것이고 주시면 감사함으로 받고 혹시 안 주신다해도 서운하고 마음 상할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칩니다. 오늘 제직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저와 여러분은 이 엘리에셀과 같은 모습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저 묵묵히 맡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할 때 주님께 사랑받고 신뢰받는 일꾼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헤아리며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그저 종의 신분으로 오직 주님만을 드러내며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사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결국 귀한 상급도 받아 누리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간절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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